질풍노도 속 부모의 역할
박현수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성장통을 겪는다. 아이들이 겪는 대표적인 성장통은 사춘기에 나타난다.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 시기인 만큼 심리적으론 매우 불안정하고 그래서 늘 불안하다. 청소년 시기를 이르는 질풍노도란 말은 ‘매서운 바람과 소용돌이치는 물결’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왜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로 표현할까?. 질풍노도처럼 감정변화를 겪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기는 이성보다는 감성, 순종보다는 반항의 모습에 더 가깝다. 성적 호기심이나 집단 폭력 등도 질풍노도와 같은 감정 변화에서 기인한다. 결코 어른들의 사회규범과 법률적 잣대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 또는 선생님들께 자신의 감정을 이해 받지 못하거나 무조건 억압 받을 때이다. 자신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또는 자신이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거절 당한다고 느낄 때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이러한 좌절감은 지나친 성적호기심에 빠진다거나 집단적으로 몰려 달리며 친구들을 괴롭힌다거나 대중 가수들에게 집착하는 등의 부정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또는 자신은 못난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로 지내기도 한다. 어른들이 청소년기의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학생들의 감정을 어린애 같다고 무시해 버리면 우리 아이들은 더 큰 출구를 찾아 반항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번 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자는 의미에서 부모로서 조심해야 할 것과 노력해야 할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부모로서 조심해야 할 첫째는 자녀를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아픔이다. 부모로부터 거절감을 느낀 자녀들은 매사에 의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이런 친구는 학교에서 친구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 한다. 자기 친구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친구를 잃을까 불안 해 한다. 그래서 친구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한다.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서 모두 그 주위를 떠나게 된다. 부모님은 본인의 행동이 자녀에게 거절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아이와 같이 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항변한다.
이런 거절감의 영향력은 나이가 어릴수록 크다. 혹시 자녀들의 유년기에 너무 바쁘게 사느라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가정이라면 지금이라도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부부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조심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부모의 생각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부모가 생각한 기준을 세워놓고 자녀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춘기의 자녀들에게 강압적인 양육은 치명적이다. 자녀들은 육체적으로 성숙해 가면서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에 반항한다. 육체적으론 어른만큼이나 성장했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부모에게 대들게 된다. 심하면 가정을 뛰쳐 나간다. 학생들이 정말로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훈계해야겠지만 아이들로서 할 수 있는 실수나 잘못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반대로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 모든 것을 부모가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은 강압적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 사람들을 괴롭혀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꼭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괴롭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이유가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속에 있는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럼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일까? 질풍노도 시기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약은 사랑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신뢰해준다고 느끼면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한다고 느낀다. 사랑 받으며 자란 아이는 불안감이나 두려움 또는 죄책감에 잘 빠지지 않으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불안하다. 학교에서도 친구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적이 되거나 혹은 자신감을 잃고 우울하게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너그럽다.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안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녀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다. 넉넉함으로 자녀를 품어주는 것이다.
별무리학교는 매주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있다. 한편으론 먼 거리를 매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하지만 이 원칙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주말에 학생들이 가정에서 따쓰함을 느끼고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받고 오는 것은 그 피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정은 학생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학교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지냈다 하더라도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우리아이들이 주말마다 가정에 돌아가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오기를 기대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은 자녀에게 무엇 하나 더 배우게 하고, 공부 조금 더 시키는데 이 시간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부모님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 가족간에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자녀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며,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자. 이러한 사랑을 담고 돌아온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복하게 공부를 한다. 친구들과 건전하게 우정을 쌓아간다.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나 역시 3자녀의 아빠로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것 같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실천해 온 것 중에 지금 생각해도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 준 후 사랑한다 말을 해 주었다. 지금 아들은 대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빠를 꼭 안아주는 것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자주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었기 때문에 아이들 역시 아빠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해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러나 자녀 셋을 키우면서 절절히 깨닫는 것은 자녀는 부모 마음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아내와 나는 지금도 매일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다. 새벽 기도 시간에 꼭 빼먹지 않는 기도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우리 주님께서 아이들을 인도해 가실 것을 알기에 주님께 맡기고 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관심 있는 것을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놀이터와 운동장에서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2500 세대 되는 큰 아파트 단지였지만 넓은 놀이터에는 나와 우리 집 세 아이만 놀고 있을 때가 많았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우리 집 아이들 외에는 노는 아이가 없을 때도 많았다. 좀 더 커서는 아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거나 토론 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서로 토론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토론을 듣던 집사람이 가끔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진지하게 이야기 할까’ 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아들과의 토론은 사뭇 진지했다.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 하는 아들이 속으론 웃기기도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론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었을까 아들은 지금은 외교관이 되겠다며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다. 자녀가 관심 있는 것을 함께 해주는 것이 부모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 나는 우리 별무리학교 제자들을 생각해 본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보내며 감정의 혼란을 겪는 우리 제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처럼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제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공감해 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제자들이 예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중보하며 돕는 일이라 생각해 본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아이들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순간 우리 아이들은 세상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가장 큰 기쁨과 평강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