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의 혈투, 8학년 국어 시험을 마치고
8학년 국어 시험을 마치고 국어 시험이 오픈 북이라는 소리에 일부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착각한 모양이다. 아니, 공부란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일부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조금 아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내 국어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생각을 한 문장 쓰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단편적인 지식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은 잘 옮겨 적어도 내 생각을 완전한 문장으로 적는 것은 어렵기도 했고 생소했던 것이다. 생각의 부재, 독서의 빈곤, 글쓰기의 무능함이 한없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랬다. 내가 얼마나 생각 없이 살았는지, 그리고 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지 알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난 내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여느 부모같은 심리적 투사가 일어난 모양이다. 지난 해부터 국어 시험을 100% 서술식, 오픈북으로 전환했다. 국어실력이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글을 읽고 문제의 뜻을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8학년 아이들도 조금은 놀랐을 것이다. 2달 동안 교과서는 거의 보지 않고 이상한(?) 단원 제목에다 줄곧 읽고 발표하고 글 쓰는 것만 시켰으니 아이들 생각으로는 공부(교과서 내용에 대한 공부)는 안 한 셈이다.
90분 동안 6문제를 푸는 것이 이번 시험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고문이다. 90분 간 화장실도 못가고 잔뜩 쌓인 책과 학습지를 뒤지며 손은 쉴 틈없이 계속 뭔가를 써야 한다. 난감해 하는 아이들부터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까지 천태만상이다. 지난 해 초등생들도 넉넉히 해냈으므로 난 희망을 보고 다시 도전한다. 우리 8학년들도 넉넉히 잘 해내리라.
결과는 일단 대성공이다. 44명의 아이들이 엉덩이 한번 안 떼고 B4지 양면을 까맣게 채웠다. 그렇게 제출한 아이들의 시험지만 봐도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해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쉬웠겠는가 . 나중에 맞을 매를 먼저 맞았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서 저력을 보았다. 문제가 요구하는 뜻, 단어의 의미조차 잘 몰라서 엉뚱한 답을 쓴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 칸을 가득 채웠다. 가슴 뭉클하다. 난 그런 경험이 없다. 분명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이다. 한명도 빠짐없이 그렇다. 6문제 중 3문제만 푼 아이도 있다. 그 마음이 보인다. 최선을 다하려는 그 정신이 느껴진다. 정성을 다해 썼다. 자신만의 생각과 고민이 녹아있다. 그래서 희망이 보인다.
아이들은 90분간 1000자에서 많게는 2000자의 글을 썼다. 200자 원고지 10매다. 교과서 한 단원을 읽고 분석하여 질문을 만들고 질문에 답도 썼다. 난 내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90분간 머리가 타오르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쓰고 답을 찾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마지막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내는 아이들은 저마다 손목을 돌린다. "손이 너무 아파요. " "글씨 쓰는 것이 느려서 힘들었어요" 참 예쁘다. 그리고 참 기특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듯 자랑하듯 말하는 한 제자의 말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외국생활 때문에 국어가 부족한 아이들이 한자 한자 새겨 쓴 글자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어려운 문제 때문에 좌절한 아이는 없는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도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다. 더 용기를 북돋우고 격려해 주어야겠다. 부모님들도 시험지에 쓰인 점수보다 90분 간 혈투를 벌이며 최선을 다한 아이들의 그 마음과 정신을 먼저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자 한자 알알이 새긴 그 아이들의 보석같은 생각들을 보기 바란다 . 한없이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기 바란다.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칭찬, 진정어린 격려가 아이의 국어 공부를 향한 열정에 큰 불을 일으킬 것이다. 아.. 이 시험지를 어떻게 부모님들께 보여드리지?
보기를 원하시는 분은 제게 문자를 보내주세요. 그러면 사진을 찍어 보내드릴게요. 단, 칭찬만 하시기로 약속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안아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세요^^ 설사 빈칸이 만더라도 점수가 낮더라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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